작성자 시립교향악단
작성일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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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차이콥스키를 대표하는 작품,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작곡된 해에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작곡됐다. 이 작품들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시기의 소산물이다. 차이콥스키는 이 시기에 인생에 있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폰 메크 부인이 그에게 정기적으로 경제적인 원조를 해주어 차이콥스키는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1876년 12월부터 폰 메크 부인과 서신 교환을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독일의 첼리스트 빌헬름 피첸하겐(Wilhelm Fitzenhagen, 1848~1890)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였다. 초연 역시
피첸하겐이 연주하였는데, 당시 연주자는 원곡의 여덟 번째 변주를 빼고, 변주의 순서도 바꾸는 등 곡을 대폭 개정하여 연주했다. 피첸하겐은 이 작품의 출판에서도 자기 생각을 관철했다. 인쇄 직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차이콥스키는 피첸하겐의 태도를 불쾌해 하였지만, 피첸하겐의 수정을 바로잡지는 않았다. 오늘날 많이 연주되는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피첸하겐판’ 이다. 다행스럽게도 차이콥스키는 1956년, 자신의 작품집을 편집하면서 그의 자필 악보를 참고하여 차이콥스키판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부활시켰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풍의 우아한 첼로 선율이 모차르트에 대한 작곡가의 존경과 사랑이 보이는 작품이다. 음악은 로코코적인 분위기에 차이콥스키의 개성이 잘 드러난다. 주제와 7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은 오케스트라 반주로 시작하여 첼로가 독주로 주제를 연주한다. 변주부분은 리듬의 변화, 빠르기의 변화 등으로 다채로운 표현으로 우아함과 화려함을 보여준다. 두 번째 변주는 스타카토가 발랄함을 주고, 세 번째 변주는 선율이 노래하듯이 흐른다. 다섯 번째 변주는 카덴차가 여러 번 등장하면서 첼리스트의 기량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질주하는 듯한 빠른 템포의 일곱 번째 변주는 곡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주제와 변주 모두 첼로의 풍부한 표현력을 다양하게 담고 있으며,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교향곡 4번처럼 주제 동기를 반복해서 들려주는 순환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1악장 서주의 주제가 4악장에서만 다시 연주되었던 교향곡 4번과 달리 교향곡 5번에서는 동일한 주제 동기가 모든 악장에서 사용된다. 1악장에서는 장송곡 느낌의 주제를 들려주나 점차 변화하여 4악장에서는 승리의 행진곡이 연주된다. 이 교향곡의 작곡을 시작하기 약 한 달 앞선 1888년 4월 15일 경,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5번의 주제가 '신의 섭리(Providence)'라고 자신의 수첩에 남겼는데, 때문에 그가 특정 주제를 반복해서 사용했으리라 추측된다. 그는 또 1악장의 도입부에 대해 "운명, 그 알 수 없는 신의 섭리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주제의 느낌이 변화하는 것을 따라가 보면 교향곡 6번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차이콥스키가 가진 신의 섭리에 대한 그의 낙관론적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핀란디아〉가 작곡되어 초연되었던 것은 1899년 12월 14일 헬싱키에서였다. 당시 헬싱키에서는 정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고, 그 날이 바로 〈핀란디아〉가 초연된 날이었다. 시벨리우스는 이듬해에 〈핀란디아〉를 수정했다. 1890년대에 시벨리우스는 이미 핀란드 내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을 받았다. 1900년 이후 그는 핀란드를 넘어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그를 ‘핀란드의 작곡가’에서 ‘세계적인 작곡가’로 거듭나게 한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핀란디아〉이다.핀란디아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 곡의 인기는 시벨리우스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가 이 곡을 작곡했던 것은 당시 헬싱키에서 일어났던 시위에 음악으로 공헌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핀란드 내에서는 정치적인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핀란드에 대한 러시아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고, 이에 대해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여 일어나라’라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단순하지만 매우 선동적인 작품으로 핀란드의 정치에 대해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모든 이들이 노래할 수 있는 선율은 핀란드 국민들의 마음에 천둥과도 같은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듬해 시벨리우스는 이 곡의 스코어를 개작하고, 이 곡에 ‘핀란디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시 18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신생단체였던 헬싱키 필하모닉(Helsinki Philharmonic)이 이 곡을 가지고 첫 번째 유럽 투어를 나서서 시벨리우스의 이름과 그의 음악을 온 유럽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 투어는 파리 엑스포에서 끝났다. 핀란디아 – 클래식 백과, 이보경 외, 음악세계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유명한 이 곡의 탄생이 이렇듯 굉장히 지역적인 문제에서부터 출발했지만, 〈핀란디아〉는 굉장히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사실이다. 〈핀란디아〉를 통해서 당시의 시벨리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살아있는 핀란드인으로 등극되었다. 당시에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강하게 보인 차이콥스키의 〈1812 서곡〉과 마찬가지로, 〈핀란디아〉가 시벨리우스가
보일 수 있었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핀란디아〉의 엄청난 성공은 시벨리우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왜냐하면 〈핀란디아〉로 인해 더욱 중요한 시벨리우스의 작품들이 빛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핀란디아〉가 매우 효과적인 음악이자, 풍성한 음향을 만들어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채를 보여준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특히 첫 시작의 어두운 구름이 낀 듯한 금관의 음향은 잊지 못할 음향이다. 무엇보다도, 〈핀란디아〉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선율은 음악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멜로디 중 하나이다. 핀란드는 결국 러시아 혁명 직후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이들의 자율권은 1920년 10월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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