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군산시립교향악단
작성일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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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르네상스의 활력과 이성의 웃음을 담은 16세기 탄호이저
탄호이저는 누구인가? 그는 중세 독일 지역의 유명한 시인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 시대에 실존했던 기사 음유시인으로 추정된다. 빈 궁정의 프리드리히 2세 시대인 기원후(A.D.) 1200~121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짐작되는 탄호이저의 본명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탄호이저’라는 이름은 ‘탄넨호이저Tannenhäuser’를 변형한 기사의 예명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당시 기사들은 소위 ‘숭고한 여성 예찬(hohe Minne: 육체적 사랑을 배제하고 정신적 사랑에 집중하는 태도)’을 지향했으나, 탄호이저는 바르트부르크 기사들의 노래 경연에서 자연스럽고 본성에 충실한 사랑을 예찬해 다른 기사들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프리드리히 2세가 세상을 떠난 뒤 궁정시인으로서 지위를 잃은 탄호이저는 13세기 중반 유럽 각지의 궁정을 유랑한 것으로 보인다. <탄호이저> 작품 속의 그는 이 시기의 인물이다. 이 이야기가 수록된 중세 『마네스 노래집』의 탄호이저 스토리에는 베누스 여신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았고, 이 내용은 이후에 첨가되었다. 그 후 16세기에 <탄호이저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독일 민요 형식의 작품이 등장했다. 이 책의 1515년 뉘른베르크 버전에서, 베누스가 자기를 아내로 삼으라고 유혹하자 탄호이저는 “마음에 간직한 여인 이외에 다른 아내를 얻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며 처음에는 이를 거부한다. 여기서 ‘마음에 간직한 여인’이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탄호이저는 베누스와 쾌락을 즐기다가 그곳을 힘들게 빠져나와 (이전에 사랑하던 엘리자베트를 만나는 일 없이) 곧장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교황 우르바누스 4세가 “이교의 쾌락에 빠졌던 죄는 내 고목나무 지팡이에 새순이 돋아나지 않는 한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사면을 거부하자 탄호이저는 다시 베누스의 동굴로 돌아간다. 교황은 사흘 뒤 지팡이에 새잎이 나는 기적을 보고 사람들을 방방곡곡으로 보내 탄호이저를 찾게 했지만, 그는 이미 베누스에게 돌아가 더 이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1515년 뉘른베르크 버전이 등장한 시기는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선박 건조 기술의 발전으로 지리상의 발견이 이루어지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야가 새롭게 열린 르네상스 후기였고,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이미 고대에 주장했던 지동설이 그리스도교 교회에 의해 오랜 세월 천동설로 고정되어 있다가 다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대전환의 시기이기도 했다. 인간의 자신감이 신앙의 견고한 굴레를 뚫고 솟아오르면서, 중세에 금지되었던 이성의 웃음이 다시 터져 나오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에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탄호이저 소재는 다양하게 변형된다. 1799년 독일 낭만주의 작가 루트비히 티크가 쓴 『진실한 에크하르트와 탄호이저Der getreue Eckart und Tannhäuser』에서는 탄호이저가 베누스와의 수월한 쾌락 대신 인생의 심오한 의미를 추구하며 정신적으로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낭만주의를 자유분방함으로 오해하는 일반적인 경향이 있지만, 사실 낭만주의는 세상의 고뇌에서 출발하는 진지한 경향이다. 이성과 합리주의에 입각한 르네상스 예술과 고전주의가 고대 그리스에서 그 원형을 찾은 것과는 달리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이 모범으로 삼았던 것은 바로 중세였다. 인간이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일 수 있는가? 이런 물음이 낭만주의자들을 지배했고, 그들은 중세의 신비와 기괴함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소재들을 발굴했다. 1806년 『어린이의 신기한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에 1515년 뉘른베르크 버전 「탄호이저의 노래」가 다시 실렸을 때는 탄호이저가 베누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성모 마리아에게 탄원하는 부분이 빠졌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1515년 버전이 원래 독일 이야기가 아니고 이탈리아에서 온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중세에서 근원을 탐구하되 로마 가톨릭의 색채를 지운 것이다. 유대인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1826년에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유대인 특유의 유머를 구사하던 쾌락주의자였다. 그가 새로 쓴 탄호이저 이야기는 16세기의 에피쿠로스적(쾌락주의적) 자세로 돌아가 있다. “옛 이교의 신들은 죽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승리 이후 그들은 지하 세계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 그곳에서는 즐거운 웃음소리와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온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당신의 심장을 묶어 끌어들인다.” 하이네는 탄호이저가 사로잡힌 베누스 여신의 세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로마 순례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지쳐 돌아온 그에게 베누스가 따뜻한 수프를 끓여 주고 상처 난 발을 치료해주자 탄호이저는 “여기서 베누스 여신과 아름다운 요정들과 더불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세계 시민’으로 살았던 하이네와는 달리 후에 민족주의자의 길로 들어선 진지한 성향의 바그너에게는 하이네의 쾌락주의적 버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바그너는 낭만주의자 티크의 독일적인 진지함으로 돌아갔다. 이 오페라의 서곡은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의 기독교적 경건함이 베누스 여신의 다신교적 쾌락의 세계를 앞뒤에서 에워싸는 구성으로 정신적 사랑과 관능적 사랑의 대결을 보여주지만, 쾌락의 세계가 결코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임을 초반부터 암시한다. ‘베누스 찬가’가 아무리 날카롭게 귀에 꽂혀도, ‘유혹의 동기’가 아무리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해도, 결국 쾌락의 세계는 장엄한 순례의 합창에 밀려나게 되어 있다. 이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하이네는 사랑하는 남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여성들의 어리석음을 경고했으나, 바그너는 여성의 희생을 숭고한 것으로 묘사하며 예술가의 특별한 지위를 부각시켰다. <탄호이저>에서도 마찬가지로 하이네는 이 소재를 르네상스의 자유로운 웃음으로 돌려 놓으려 했지만, 바그너는 스스로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단언하면서도 경건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다시 한 번 예술가의 특별한 지위를 강조했다. ‘낭만주의적 동경과 세계의 고뇌를 짊어진 예술가의 구원’을 강조하려고 이야기의 결말을 바꾼 것이다. 비슷한 시대의 작가, 같은 소재라 해도 작가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따라 이처럼 상반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오늘날 <탄호이저>를 바그너가 아닌 하이네의 작품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음악의 압도적인 감동이 중요한 이유겠지만, 예술을 향유하는 감상자의 다수가 이성의 웃음보다는 감성적인 감동을 원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사라사테 카르멘 환상곡
사라사테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에서 [찌고이네르바이젠]과 더불어 [카르멘 환상곡]은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명곡으로 손꼽힌다. 1883년에 작곡된 [카르멘 환상곡]은 조르쥬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등장하는 명장면들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축소, 정리, 편곡한 작품으로서, 사라사테의 초인적인 테크닉과 탁월한 극적 감수성이 집약되어 있는 명곡 가운데 명곡이다. 4막 전주곡인 아라고네이즈, 1막에 등장하는 하바네라, 세기디야, 2막에 등장하는 집시들의 춤이 차례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바이올린의 트릴, 겹음, 트레몰로, 플래절렛, 피치카토 등등이 현란하게 펼쳐지며 연주자로 하여금 고도의 비루투오시티와 드라마틱한 추진력을 요구한다.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곡 가운데 난곡으로서, 테크닉도 어렵지만 오페라 원곡에서 기인하는 사랑과 질투의 희비쌍곡선이 만들어내는 연출적인 효과를 극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것 또한 지극히 어렵다. 사라사테의 이 초인적인 편곡에 자극을 받아 20세기는 왁스맨의 [카르멘 환상곡]을 비롯하여 부조니의 [카르멘 주제에 의한 소나티네], 호로비츠의 [카르멘 환상곡], 셰드린의 [카르멘 모음곡] 등 악기와 장르를 가리지 않은 많은 카르멘 편곡들이 공연 레퍼토리로 자리잡으며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위대한 미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앨버트 스팔딩은 사라사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을 남긴 바 있다. “개똥지빠귀처럼 노래를 부르는 그의 바이올린에서는 일체의 테크닉적인 난해함을 내던져버린 우아함과 자연스러움이 충만한 편안한 분위기만이 흘러나온다.” 이러한 표현은 그의 연주만이 아니라 음악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차원에서 [카르멘 환상곡]은 내용 없는 밋밋한 테크닉의 향연이 아니라 카르멘의 드라마틱하면서도 뜨거운 집시의 삶과 돈 호세의 비장함이 배어나오는 또 다른 의미의 작은 오페라라고 말할 수 있다.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골 기사라는 뜻으로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조반니 베르가의 극을 번안하여 각색한 단막 오페라이다. 도입의 합창부분인 Gli aranci olezzano(리 아란치 올렛잔노)는 오렌지꽃은 향기롭고, 종달새는 노래한다 라고 시작되는 것으로, 봄 부활제의 즐겁고 명랑한 자연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초연은 1890년 5월 17일 로마의 콘스탄틴 극장이었는데, 그날 밤 극장은 만원이었으며, 개막 전에 유명한 시칠리아나가 블려지기 시작하자 청중들은 순식간에 감격의 물결에 파묻혀 버렸다고 한다. 조용한 시골을 배경으로 일어난 살인으로 결말되어 지는 비극적인 사랑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마스카니가 8일만에 작곡한 1막 2장의 짧은 작품이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풍부한 극적 내용으로 마스카니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베르디 대장간의 합창
베르디 오페라 대장간의 합창은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2막을 여는 합창곡 베르디의 4막 오페라로 1852년에 작곡되었고, 1853년 1월 9일 로마의 아폴로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제목의 뜻은 트로바토레를 의미하며, 산 속에 모여 사는 집시들이다. 극의 내용은 15세기 초 스페인의 비스케이와 아라곤 지방을 배경으로 하여 박해 받은 집시의 복수 얘기와 트로바토레의 사랑 얘기로 이루어져 있다. 15세기초 트로바토레를 주인공으로 한 집시의 복수 장면이 많은데도 인기가 높은 것은 드라마틱한 구성과 아름다운 선율 때문이다. 제2막에서 스페인 산 속의 집시들이 사는 집에서 날이 새면 대장간 일이 시작된다. 힘찬 망치 소리에 맞추어 누가 집시처럼 명랑하게 살까 하고 노동의 즐거움을 노래한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불과 한달만에 완성하였는데, 스토리가 복잡하여 내용 이해가 어렵고 대본 구성이 조악하다는 악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베르디의 많은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박력 있고 열정이 넘치는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베르디 특유의 감각으로 이탈리아 반도다운 에너지와 오페라가 줄 수 있는 성악적인 매력을 완벽하게 살려 낸 명작이다
비제 카르멘 투우사의 노래
비제의 투우사의 노래는 1875년 오페라 카르멘 2막에 나오는 바리톤 아리아이다. 스페인 군인 돈 호세는 담배공장 여공인 집시여인 카르멘의 유혹에 빠져든다. 돈 호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으나, 카르멘에게 마음을 뺐겨 약혼녀를 버리게 된다. 하지만 밀당의 고수인 그녀의 마음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최고 인기 투우사 에스까밀료가 경기에서 이기고 사람들과 술집을 가는데, 그곳에서 카르멘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에스까밀료는 카르멘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투우사의 용맹스러움과 남자다움을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투우사의 노래이다. 스페인의 정취와 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곡이다. 위풍당당한 리듬이 우리의 잠재된 흥을 깨우는 듯하다. 결국 카르멘은 새로운 남자 에스까밀료에게 마음을 주게 되고, 돈 호세를 배반하게 된다. 질투의 화신이 된 돈 호세는 에스까밀료의 투우장으로 찾아가 그곳에 있던 카르멘을 죽이고 오페라는 끝이 난다.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때 당시 유명 예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지만 대중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관능적이고 과격한 카르멘이라는 여주인공 때문이다. 시대적 상황도 분위기로 볼때 야생화 같은 최하층민 집시여인을 여주인공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각관계와 여주인공의 죽임이라는 무겁고 비극적인 결말은 아주 실험적인 내용이었다.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비제는 크게 상심하여 초연 3개월 만에 요절하게 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비제의 카르멘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페라 중 하나로 꼽힌다.
베르디 축배의 노래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를 오페라의 왕이라 부르는 것에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르디의 음악은 조건 없이 대중 속에 받아 들여지는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디의 대표곡으로 1853년에 발표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제 1막 제2장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주인공 알프레드가 부르기 시작하여 이윽고 숙명적인 사랑에 빠지게된 비올레타가 받아 2중창이 되고 다시 합창까지 합세하는 화려한 노래로 제1막 앞부분의 연회 장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베르디는 어릴때부터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강했고, 7세때 교회의 미사를 반주하여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주세페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봤던 아버지의 친구 바레치의 도움으로 베르디는 부세토 시의 음악가 프로베시를 찾아가 작곡을 배울 수 있었고 16세에 교향곡을 작곡할 정도가 되었다. 바레치의 추가적인 도움으로 베르디는 음악의 중심지 밀라노에 가서 연령 제한을 무시하고 밀라노 음악원에 시험을 쳤으나 아쉽게 떨어졌고, 은사 프로베시가 죽은 뒤 그 뒤를 잇기 위해 베르디는 다시 부세토로 돌아가게 되었다.
스비리도프 눈보라
스비리도프 눈보라는 푸쉬킨의 단편집을 1974년에 작곡하여 발표한다. 이 중 4번 로망스가 이 곡을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곡은 마리아란 여성이 부모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와 청년 장교인 블라디미르를 만나러 약속 장소에 가지만 갑자기 휘몰아치는 눈보라로 인해 블라디미르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나폴레옹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어 사랑이 어긋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9곡을 만들어 음악적인 삽화란 부제로 발표를 한다. 언급했듯이 4번 로망스의 애절함 그리고 러시아적 정서가 녹아들어 간 곡의 흐름 등으로 이 작품을 세계에 알려지게 한다. 9개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1.트로이카, 2.왈츠, 3.봄과 가을, 4.로망스, 5.전원곡, 6.군대 행진곡, 7.결혼식, 8.왈츠의메아리, 9.겨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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