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도 울어버린 금강나루터
작성자 ***
작성일06.01.24
조회수8096
첨부파일
P1010303.jpg (파일크기: 38, 다운로드 : 167회) 미리보기
내가 코메디언 김병조씨 처럼 그리 유명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문 가문을 자랑하면서 고향을 사랑하면서 전의이씨 30세손 으로 써 가문에 욕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늘가지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내 나이가 그와 같은 또래로 생각해보면 물론 지천명을 지나가는 나이 이지만 그는 많은사람들을 웃겼고 나는 조상들이 물려준 고향을 떠나본 일이 없는 토종촌놈이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 이름도 군산 개정율북 전의이씨 카페 라고 해서 열심히 메니저로 활동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군산에서 살고 개정면 율북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전의이씨 라고 고집하고 싶어서 이다 나도 카페 이름을 멋지게 하나 만들어 많은 인터넷 동호 회원들을 모으고 싶지만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한분씩 찾아 오셔서 회원으로 가입해 주시면 더 반갑고 기쁘다
내 친구 환섭이는 서울 고려대학 근처에서 30 년이넘게 간판없는 양장점을 운영 하는데도 지금까지 일 잘나가는 고급가게로 정평이나 유한 마담들이 몰리고 손님들이 많다하니 참 그 녀석이나 나도 마치 한가지로 고집들이 너무나 세다 나는 카페 메니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권투 시합에 나오는 메니저가 좋게 생각이 되어서 나도 메니저 한번 해야겠다고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인터넷을 잘 모르고 남들이 하니까 그냥 메니저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인터넷 카페를 메니저로 운영 하다보니 그리 쉬운일만은 아니고 혼자서 운영하면서 시골에 구멍가게 처럼 활발하게는 움직일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밤을 낮삼아 가면서 매일 새로운 자료를 업그레이드를 해야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고 주경 야독를 하고 있다 가끔집 사람이 인터넷 중독자가 아니냐고 한다 이러다가 수필 한권쯤은 내게도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카페를 하나를 운영한다는것이 무척 힘이 드는 일이다 얼마전에 어느분은 자기가 메니저로 운영하던 카페를 문을 내리려 하는데 운영할 사람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해 볼일이다 수많은 카페들이 있고 좋은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곳이 있는가 하면 아주 모범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는 카페들도 많이 있었다 인터넷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어떤곳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남녀가 어울러어진 음란사이트였다 이곳은 어린이들이 절대로 보면 안되는 장면들를 노출 시켜 놓아저 있었다 무슨 큰자랑 거리라고 올려진 불결한 사이트와 카페들를 접해도 보았다
어느때는 잘못 검색을 하다가 컴퓨터를 날려본 적도있다
이렇게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남의소중한 자료를 한번에 날려 버리는 바이러스가 담긴 함정들이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길은 평소 믿을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가 아니라면 절대로 열어볼 필요가 없다 또한 다른데에서 날라오는 스템에 해당하는 자료는 무조건 열어보지 말고 바로 삭제를 시키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배추머리 김병조님 은 한학을 많이 해오셨고 할아버지로 부터 한문을 많이 배웠다 하시는데 나는 어렸을 적에 우리 할아버지 를 따라 다니면서 시를 읊는 자리에나 한시를 지으는 곳을 나는 많이 따라 다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읆는다는 말처럼 자주 따라 다니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가끔 창도 나오고 소리도 나오고 흥얼 거리고 있었고 고향땅 군산에 대하여 많은 전설들를 접할수있었다
이것이 국문학에서 말하는 口傳文學 이라하지 않는가? 내가 그길로 쭉 갔더라면 지금쯤 유명인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우스운것이다 내 집안 동생은 말만하면 모두가 알수있는 유명한 코메디언으로 지금열심히 활동중이다 문학을 좋아 하는 끼가 있는 집안 덕분이라고도 생각했다
우리 마을에는 농사를 많이 지어 도지를 많이 받는옛날 토속부호 만석꾼 채호덕씨 와 문종구씨 집안의 고택이 가까이 있다 마을 지명도 臥龍(와룡)이라 하여 용이 누워있는 형상의 지형이 있어 명당 자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총리를 지내신 고건씨 의 부친께서도 잠시 이곳에서 사셨다한다
이곳에서 우리선조 어른들께서 옛날에는 제실이나 서당에 많이 모이셔서 한시를 지으시고 장구로 취임새 를 넣어 가시면서 노시던 이곳에 자주 할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명당이 있다 하여 자손들을 공부를 많이 시키는 우리집안에서는 내년 사법.행정.기술,고등고시 합격생들을 가문에서 많이 배출해오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선조들 께서는 청백리 집안답게 가풍을 도도 하게 전의이씨 가훈을 家傳忠孝世守仁敬이라 해서 세종대왕께서 주신 가훈을 받들고 지키고 있다 가문 대대로 국가에는 충성하고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어린아이 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시다
이는 태조 이성계께서 나라들 세우실적에 적으로 부터 위협을 받는 위급한 상황을 헤결하도록
금강에서 강을 무사히 건너게 해드리고 이치 장군으로 하여금 국란을 극복게한 공로가 있어 지금의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 전의이씨 가문의 시조이신 李悼 할아버님 께 상을 내려 살게 하시고 연기군, 예산군 ,공주시 등 조상들이 전통을 이어가며 살아 오신것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가문의 전통을 잘 이어가는 충남 아산에 외암 마을이 우리종친들이 사시는 곳이다 이곳들이 오늘날 행정수도 중심지가 되어 일천여년 동안 가문을 융성케 하여온 우리집안 어르신들이 선견 지명이 게셔서 오늘에 이르르니 영광이라 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는 과천 주변에도 전통을 이어 가시던 집안 종친 어른들이 많이 사셨었다한다 오늘 이야기는 이 금강 나루터 주변에 사시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다
우리 할아버님께서는 봄이오면은 방죽을 찾아 다니시면서 낚시를 많이 다니셨는데 초봄이 오기전에는 꼭 마을에 있는 대나무밭에이나 우리집 대밭에 가셔서 낚시대 깜을 늘 준비 하시고 낚시 줄을 메시거나 낚시줄을 노끈으로 감아 만드시는데 방죽을 봄철에 찾아나서실 체비는 낚시대깜을 미리 준비하시는 일부터시작하신다
그래서 튼튼한 낚시대를 보아놓기 위해서 지프라기를 들고 대밭에서 좋은 낚시대깜을 미리 대나무에 지정하여 묵어 놓고 나오셨다가 이듬 해에 대나무가 물이 오르기전에 잘드는 칼을 가지고 골라 놓은 대나무를 베시고 대밭에서 나오시는데 즉시 왕겨 불에 지피거 대나무를 구워 가지고 낚시대를 낭창낭창하게 만드셨다
그 당시는 지금 처럼 낚시대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 이라서 낚시와 망태를 메고 산을 넘고 들을 건너서 미리 입감을 던저준 방죽에가셔서 낚시를 해오시는데 어떤 때는 바구리에 가득 하게 물고기를 잡아 오시지만 빈 망태를 가끔은 가지시고도 오신다물고기를 많이 잡으신 날에는 빨간 붕어가 파닥 거리게 많이 잡아 오시는데 물에서 건저낸지가 상당한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까지 붕어들이 살아있다 참 생명력이 길다고 생각했다
집에가저 오셔서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서 큰 널벅지에 물고기를 부어 놓으면 금방 다시 살아나서 원기를 회복하는데 이때 아가미에서 헤금내를 전부 빼내서 물고기 가 깨끗해질때까지 기다리신다물고기를 자세히 보면 황금금빛깔이 선연하게 나는데 붕어들을 큰바구니에 가득차게 잡아 오시는 날엔 온 가족들에게 인심이 후 하시고 기분이 무척 좋으셔서 매운탕을 맛있게 드셨다
나는 오늘 금강 나루터가 있는 장항쪽에 가서 명절에 고향에 찾아오는 아들과 손자들을 위해서 반찬거리 꽃게랑 생선을 서천시장에 가서 사왔다 옛날에는 그곳에 가려며는 금강 나루터인 도선장에가서 연락선을 타고 다시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금강에 하구뚝이 생겨서 이제는 집에서 승용차로 15분 이면 다녀올수가 있기에 그곳에 가서 서천장 을 보았다
막내 아들이 모처럼 집에와서 어제 밤에는 손녀딸 초연이가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나를 깨워주었다 방안에는 난초 꽃인 긴기아남 꽃이 활짝 피어 방안으로 향기가 가득차 있었지만 나는 방안에 계속 있어서 이렇게 향이 좋은줄 몰랐다 옛날 같으면 설이 몰아온다고 어른들께서 가마니를 손으로쳐서 장날 지게에지고 장에가서 팔아 식량을 들여 놓았고 정월 모름이 되면 오곡 밥을 일곱가지 곡식를 넣어 밥을해서 팥밥을 마을에있는 여러가정들이 나누어 먹던때가 있었다
집집마다 나물 반찬이나 탕을 해서 나누어 주고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여러집 팥밥을 얻어 먹어야 건강하고 그해 농사가 풍년이 된다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먹어가는 우리들도 명절이나 정월보름이 기다려지지 않으니 어쩌다 양말 한컬레만 얻어 신어도 기분이 좋았고 신이났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기쁨들이 듬뿍 담겨 있었던 그 시절들이 이제 아쉬워지고 있다
해마다 명절이되면 고향을 찾아오던 친구들은 이제나이가 들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않게시고 예전에 살던 고향집은 남들이 살거나 먼 친척들이 살기때문에 옛날이살던 그집을 들어가 보지못하고 자동차로 지나쳐 버리더니 몇년 전부터는 아에 오지도 않고 전화도없다 다만 서울이나 경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향우회를 한단다 서울이 넘처서 아파트 한체 값이 고향 동네를 전부 사도 돈이 남는다고 하니
고향 땅 군산도선장 나루터 에는 갈매기들도 울어 버리다 휭하니 창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서울로 가저갈수 없는 금강 나루터는 오늘도 탕류의 물을 내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지만 일백 십여년전 선교사들이 처음 뱃머리를 돌려서 댓다 하던 구암동 금강 나루터에는 이름 모를 물새 소리만 고향 떠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유서 깊은 오성산 을 향해서 날라가고 있다 이 아침에도 기러기들이 소리를 내면서 금강 북쪽으로 향해서 날아 가고있다
고향을 지키다 복수에 물이 차는 간경화 병으로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서 자기시신을 유언으로 원광대학 의대에 기증한 친구가 준 2004년 4월30일 리장을 하면서 마지막 으로 동네회관을 지은후에 선물로준 수건이 이제 글씨가 거의 다 지워진 체로 처마 끝에 매달려 있다 이번주부터는 구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있다 그런데 내고 향을 떠난 기호.승경이. 명수.인석이 와 옥순이 순옥이 .성자 는 언제 다시 고향을 찾아올지 모르는데 나는 이 한주간를 오지않을 그 녀석들을 기다리면서 다시 보내게 될것이다..... 많은 우리군산 시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귀경길들 조심 하시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을 잘 보내셨으면 좋겠다
내 나이가 그와 같은 또래로 생각해보면 물론 지천명을 지나가는 나이 이지만 그는 많은사람들을 웃겼고 나는 조상들이 물려준 고향을 떠나본 일이 없는 토종촌놈이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 이름도 군산 개정율북 전의이씨 카페 라고 해서 열심히 메니저로 활동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군산에서 살고 개정면 율북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전의이씨 라고 고집하고 싶어서 이다 나도 카페 이름을 멋지게 하나 만들어 많은 인터넷 동호 회원들을 모으고 싶지만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한분씩 찾아 오셔서 회원으로 가입해 주시면 더 반갑고 기쁘다
내 친구 환섭이는 서울 고려대학 근처에서 30 년이넘게 간판없는 양장점을 운영 하는데도 지금까지 일 잘나가는 고급가게로 정평이나 유한 마담들이 몰리고 손님들이 많다하니 참 그 녀석이나 나도 마치 한가지로 고집들이 너무나 세다 나는 카페 메니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처음에는 권투 시합에 나오는 메니저가 좋게 생각이 되어서 나도 메니저 한번 해야겠다고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 인터넷을 잘 모르고 남들이 하니까 그냥 메니저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인터넷 카페를 메니저로 운영 하다보니 그리 쉬운일만은 아니고 혼자서 운영하면서 시골에 구멍가게 처럼 활발하게는 움직일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밤을 낮삼아 가면서 매일 새로운 자료를 업그레이드를 해야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고 주경 야독를 하고 있다 가끔집 사람이 인터넷 중독자가 아니냐고 한다 이러다가 수필 한권쯤은 내게도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카페를 하나를 운영한다는것이 무척 힘이 드는 일이다 얼마전에 어느분은 자기가 메니저로 운영하던 카페를 문을 내리려 하는데 운영할 사람이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해 볼일이다 수많은 카페들이 있고 좋은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곳이 있는가 하면 아주 모범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는 카페들도 많이 있었다 인터넷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어떤곳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남녀가 어울러어진 음란사이트였다 이곳은 어린이들이 절대로 보면 안되는 장면들를 노출 시켜 놓아저 있었다 무슨 큰자랑 거리라고 올려진 불결한 사이트와 카페들를 접해도 보았다
어느때는 잘못 검색을 하다가 컴퓨터를 날려본 적도있다
이렇게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남의소중한 자료를 한번에 날려 버리는 바이러스가 담긴 함정들이 도처에서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길은 평소 믿을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가 아니라면 절대로 열어볼 필요가 없다 또한 다른데에서 날라오는 스템에 해당하는 자료는 무조건 열어보지 말고 바로 삭제를 시키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배추머리 김병조님 은 한학을 많이 해오셨고 할아버지로 부터 한문을 많이 배웠다 하시는데 나는 어렸을 적에 우리 할아버지 를 따라 다니면서 시를 읊는 자리에나 한시를 지으는 곳을 나는 많이 따라 다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읆는다는 말처럼 자주 따라 다니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가끔 창도 나오고 소리도 나오고 흥얼 거리고 있었고 고향땅 군산에 대하여 많은 전설들를 접할수있었다
이것이 국문학에서 말하는 口傳文學 이라하지 않는가? 내가 그길로 쭉 갔더라면 지금쯤 유명인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니 우스운것이다 내 집안 동생은 말만하면 모두가 알수있는 유명한 코메디언으로 지금열심히 활동중이다 문학을 좋아 하는 끼가 있는 집안 덕분이라고도 생각했다
우리 마을에는 농사를 많이 지어 도지를 많이 받는옛날 토속부호 만석꾼 채호덕씨 와 문종구씨 집안의 고택이 가까이 있다 마을 지명도 臥龍(와룡)이라 하여 용이 누워있는 형상의 지형이 있어 명당 자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총리를 지내신 고건씨 의 부친께서도 잠시 이곳에서 사셨다한다
이곳에서 우리선조 어른들께서 옛날에는 제실이나 서당에 많이 모이셔서 한시를 지으시고 장구로 취임새 를 넣어 가시면서 노시던 이곳에 자주 할아버지를 따라 다녔다 명당이 있다 하여 자손들을 공부를 많이 시키는 우리집안에서는 내년 사법.행정.기술,고등고시 합격생들을 가문에서 많이 배출해오고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선조들 께서는 청백리 집안답게 가풍을 도도 하게 전의이씨 가훈을 家傳忠孝世守仁敬이라 해서 세종대왕께서 주신 가훈을 받들고 지키고 있다 가문 대대로 국가에는 충성하고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어린아이 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시다
이는 태조 이성계께서 나라들 세우실적에 적으로 부터 위협을 받는 위급한 상황을 헤결하도록
금강에서 강을 무사히 건너게 해드리고 이치 장군으로 하여금 국란을 극복게한 공로가 있어 지금의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 전의이씨 가문의 시조이신 李悼 할아버님 께 상을 내려 살게 하시고 연기군, 예산군 ,공주시 등 조상들이 전통을 이어가며 살아 오신것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가문의 전통을 잘 이어가는 충남 아산에 외암 마을이 우리종친들이 사시는 곳이다 이곳들이 오늘날 행정수도 중심지가 되어 일천여년 동안 가문을 융성케 하여온 우리집안 어르신들이 선견 지명이 게셔서 오늘에 이르르니 영광이라 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는 과천 주변에도 전통을 이어 가시던 집안 종친 어른들이 많이 사셨었다한다 오늘 이야기는 이 금강 나루터 주변에 사시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조금 해봐야겠다
우리 할아버님께서는 봄이오면은 방죽을 찾아 다니시면서 낚시를 많이 다니셨는데 초봄이 오기전에는 꼭 마을에 있는 대나무밭에이나 우리집 대밭에 가셔서 낚시대 깜을 늘 준비 하시고 낚시 줄을 메시거나 낚시줄을 노끈으로 감아 만드시는데 방죽을 봄철에 찾아나서실 체비는 낚시대깜을 미리 준비하시는 일부터시작하신다
그래서 튼튼한 낚시대를 보아놓기 위해서 지프라기를 들고 대밭에서 좋은 낚시대깜을 미리 대나무에 지정하여 묵어 놓고 나오셨다가 이듬 해에 대나무가 물이 오르기전에 잘드는 칼을 가지고 골라 놓은 대나무를 베시고 대밭에서 나오시는데 즉시 왕겨 불에 지피거 대나무를 구워 가지고 낚시대를 낭창낭창하게 만드셨다
그 당시는 지금 처럼 낚시대가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 이라서 낚시와 망태를 메고 산을 넘고 들을 건너서 미리 입감을 던저준 방죽에가셔서 낚시를 해오시는데 어떤 때는 바구리에 가득 하게 물고기를 잡아 오시지만 빈 망태를 가끔은 가지시고도 오신다물고기를 많이 잡으신 날에는 빨간 붕어가 파닥 거리게 많이 잡아 오시는데 물에서 건저낸지가 상당한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까지 붕어들이 살아있다 참 생명력이 길다고 생각했다
집에가저 오셔서 두레박으로 샘물을 퍼서 큰 널벅지에 물고기를 부어 놓으면 금방 다시 살아나서 원기를 회복하는데 이때 아가미에서 헤금내를 전부 빼내서 물고기 가 깨끗해질때까지 기다리신다물고기를 자세히 보면 황금금빛깔이 선연하게 나는데 붕어들을 큰바구니에 가득차게 잡아 오시는 날엔 온 가족들에게 인심이 후 하시고 기분이 무척 좋으셔서 매운탕을 맛있게 드셨다
나는 오늘 금강 나루터가 있는 장항쪽에 가서 명절에 고향에 찾아오는 아들과 손자들을 위해서 반찬거리 꽃게랑 생선을 서천시장에 가서 사왔다 옛날에는 그곳에 가려며는 금강 나루터인 도선장에가서 연락선을 타고 다시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금강에 하구뚝이 생겨서 이제는 집에서 승용차로 15분 이면 다녀올수가 있기에 그곳에 가서 서천장 을 보았다
막내 아들이 모처럼 집에와서 어제 밤에는 손녀딸 초연이가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나를 깨워주었다 방안에는 난초 꽃인 긴기아남 꽃이 활짝 피어 방안으로 향기가 가득차 있었지만 나는 방안에 계속 있어서 이렇게 향이 좋은줄 몰랐다 옛날 같으면 설이 몰아온다고 어른들께서 가마니를 손으로쳐서 장날 지게에지고 장에가서 팔아 식량을 들여 놓았고 정월 모름이 되면 오곡 밥을 일곱가지 곡식를 넣어 밥을해서 팥밥을 마을에있는 여러가정들이 나누어 먹던때가 있었다
집집마다 나물 반찬이나 탕을 해서 나누어 주고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여러집 팥밥을 얻어 먹어야 건강하고 그해 농사가 풍년이 된다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먹어가는 우리들도 명절이나 정월보름이 기다려지지 않으니 어쩌다 양말 한컬레만 얻어 신어도 기분이 좋았고 신이났던 그 가난했던 시절의 기쁨들이 듬뿍 담겨 있었던 그 시절들이 이제 아쉬워지고 있다
해마다 명절이되면 고향을 찾아오던 친구들은 이제나이가 들어서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않게시고 예전에 살던 고향집은 남들이 살거나 먼 친척들이 살기때문에 옛날이살던 그집을 들어가 보지못하고 자동차로 지나쳐 버리더니 몇년 전부터는 아에 오지도 않고 전화도없다 다만 서울이나 경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향우회를 한단다 서울이 넘처서 아파트 한체 값이 고향 동네를 전부 사도 돈이 남는다고 하니
고향 땅 군산도선장 나루터 에는 갈매기들도 울어 버리다 휭하니 창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서울로 가저갈수 없는 금강 나루터는 오늘도 탕류의 물을 내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지만 일백 십여년전 선교사들이 처음 뱃머리를 돌려서 댓다 하던 구암동 금강 나루터에는 이름 모를 물새 소리만 고향 떠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유서 깊은 오성산 을 향해서 날라가고 있다 이 아침에도 기러기들이 소리를 내면서 금강 북쪽으로 향해서 날아 가고있다
고향을 지키다 복수에 물이 차는 간경화 병으로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서 자기시신을 유언으로 원광대학 의대에 기증한 친구가 준 2004년 4월30일 리장을 하면서 마지막 으로 동네회관을 지은후에 선물로준 수건이 이제 글씨가 거의 다 지워진 체로 처마 끝에 매달려 있다 이번주부터는 구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있다 그런데 내고 향을 떠난 기호.승경이. 명수.인석이 와 옥순이 순옥이 .성자 는 언제 다시 고향을 찾아올지 모르는데 나는 이 한주간를 오지않을 그 녀석들을 기다리면서 다시 보내게 될것이다..... 많은 우리군산 시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귀경길들 조심 하시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명절을 잘 보내셨으면 좋겠다
최근수정일 2019-07-31
열람하신 정보에 대해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