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본 내고향 / 개정면 당살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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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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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 내 고향이 있다, 나에게는 마음이 자꾸만 달려가는 보고 싶은 그리운 그 시절이다, 개정면 운회 리 당살 매 라는,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내고, 지금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이웃마을에서 시골냄새가 좋아서 살고 있다 ,
집 앞 에는 작은 바위가 있어, 전의이씨 집성촌 집안 어른들은 우리가 살았던 종가집을, 늘 바위백이 큰집이라 했고, 어릴 적에 올라가기가 좋은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그 소나무에 원두막을 짖 거 나, 소를 메여 놓아서, 늘 내 친구 승경이네 집에서는 못맞땅 해왔다,
그 이유는 소나무 바로 아래에 승경이 친구의 할아버지 산소가 있고, 가끔은 그 산소에 나온 승경이 할머니는 여기에 우리남편 산소가 있는 디, 이것들이 이러면 못써 하시면서, 메어놓은 소 고 삐 를 슬며시 풀어 놓은 셨 는 데 ,
이때 송아지가 딸린, 어미 소 와 송아지가 한없이, 이웃 마을로 달려가거나 들길을 따라 아산 리 신작로 가는데로 뛰어 다닌곤 한다, 이곳은 평소에 논에 물을 잡아가두고, 이른 봄에 천수답 못자리를 하려고 수문을 내리는데, 이곳을 이마을 사람들은 관이라고 부른다,
이관으로 고삐풀린 소가 달려가면. 영영 소를 잃어버릴 것 같은데, 나와 종선이 동생이 열심히 소를 잡으러 달려가면, 이웃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풀 린 소고삐를 달려가서 잡아주어 시위는 일단 끝이 난다 .그래도 이 암소 녀석이 여러 집 농작물을 못 먹게 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야단들 이지만,
서로 이웃 간에 노인이 하신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웃어넘기기도 하는 시골인심이다, 우리 집은, 산이없어 산에 마 탕 히 소고삐를 맬 때가 없으면, 마당에다 말뚝 하나를 박아놓고, 고삐를 매곤 한다, 어느 때는 다시 잠잠 하다가,
여름철이 되면 집안에서 소똥 냄새가 나기 때문에 다시 시원한 그늘을 찾아 그곳에 소를 메는데, 어쩌다 산소 뒤에서 배설 를 한 소란 놈의 고삐를 잡아서,다시 엉덩이를 힘차게 승경이 할머니께서 줄로 내리쳐,
놀란 소가 날아나는데, 이때가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소고삐 잡이 놀이가 더 좋은 철없이 뛰놀던 그시절이, 지금도 다시 해보고 싶은 추억으로 그 생각이 나고, 가슴이 오늘따라서 더 조여오고 미어진다, 누가 우리를 백의민족이라 했던 가. 흰옷을 좋아하고 저고리와 조끼 하얀색 두루마기를 입고 양반들만 모이는 곳에서 시조나 창을 즐기시던 인심 좋은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집 담장 밑으로 모여 드는, 거지들에게 밥을 해먹였다는 곳이 바로 우리큰집 터 이다 .그래서 어느 노승이 지나가다 큰 사람이 나올 명당자리라고 했다면서,우리 종가집 장손은 이 집터를 꼭 지켜야한다고 말씀하셨고 ,그 약속을 지금도 우리큰집 형님께서 지켜 가신다,
집 앞에는 아산 리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수로가 있고 .뒷산에는 봄이 오면 과수원에서 복사꽃이피고 살구꽃이 만발하여 꿈에 자주 보는 내 고향 집이었다,어느 때는 겨울철이 되면 ,집 앞에 있는 두 모 논에 오리가, 논두렁에는, 참게가 살았고 ,
초가집 처마에는, 빨갛게 호박꽂이용 호박말랭이가 늘어지고, 처마 시렁에는 시래기가 ,무 우 말랭이를 널어놓은 멍석위에는, 하얀색이 누렇게 변하는 과정을 거처 겨울내내먹을 말랭이가 만들어지고 있다 , 응기가 파놓은 논두렁이있는 구불구불한 쥐구멍에는,
언제 물어왔는지 누렇게 익을 벼 목 아 지<목>를 잘라서, 놓은 먹잇감이 있었다, 오늘은 새벽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러 가지 인터넷검색과 자료를 정리하고 잠간 잠이 들었는데 . 꿈결에 옛날 내가 살았던 큰집 생각이 나서, 가슴이 꽉 미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추억은 있지만, 나에게도 작지만 아름다운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내고향이 당살매 뒷동산이다. 그 시절이 생각이 나고, 어릴 적 내가 사용하던 여러 가지 소지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보관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추억 속에서만 그림자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다, 꿈결에 내가 잠을 자던 아래채의 문을 열고 보니, 반평생이 지난 너무도 그리운 그 시절이 친구들이 생각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두 리 번 거리다가 이글을 쓴다 .
그때 작은 무궁화나무 울타리 밑에 심었던 봉선화 꽃이랑 목화밭에서 철없이 따 먹었던 , 맛있는 목화송이랑 .작약 꽃 봉우리에 입맞춤하던 부드러운 기억이 내 머리를 맴돌곤 한 다, 가지 밭 사이에서 동생들과 숨 박 꼭 질 하다가 가지를 따서 입에 물고 장난을 치던 그 시절이었고
봄이면 무궁화 잎을 따서, 풋 나물로 만들어 보리밥을 해주셨던, 할머니 생각이 더 나는 아침이다 .새벽에 아침 해 가 뜨기 전에 , 소여물을 작두질 하던 내 모습과, 친구와 고구마 통가리 밑에서 함께 새우잠을 자던 그 모습이 생각나고,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나래를 역어서, 생 집 울타리를 하고, 노런 지붕 이 된 ,초가지붕에 용마루를 틀어 올려서 마감 하던 날 에는, 호박떡과 고구마 밥을 해먹거나, 무를 썰어 넣고 ,양념간장에 햇 참깨로, 금방 짠, 참기름으로 밥을 비벼서 맛있게 먹었던 그 추억이,
그리고 토방 밑에다 만든 마루에 ,집둥지를 만들어주고, 암탉이 낳아 놓은 누런고 따뜻한 달걀을 꺼내어 풀빵 집에서 바꿔서 먹었던 ,그 맛있는 풀빵생각이 더 소록소록 난 다, 눈길의 흰 고무신 발자국을 남기신 그자국을 따라서가면 ,우리옥실 작은 할아버지네 집을 지나, 방앗간 사랑방에서 겨울 내내 어른 들 의 화투놀이를 하면서,
으래 큰아버지 진지 잡수세 요, 철모르던 우리가 큰소리로 밖에서 소리를 내면, 간밤에 몽땅 돈내기해서, 본전을 잃은 어른께서는, 너희들 때문에 화투 끝발이 안선다고, 애원하는양 ,아직 못 간다고 해라 하시면서, 되 창문 넘어 로 말씀 하실 적 에. 함께간 동생하고 합창으로, 아버지 진지 잡수세 요!~다시 하면, 판이 식는다고 야단치시던,
그때 그 시절 어른들 얼굴이 보고싶다 , 거의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지금, 우리도 겨울밤이 되니 친구들과 함께 나도 그 시절로 가고픈, 바로 내가 생각하는 오늘이다..언제나 꿈에 본, 그 시절로 다시가 보려나....[출처] 카페 대문 (내고향 군산 전의이씨 카페) |작성자 청운
집 앞 에는 작은 바위가 있어, 전의이씨 집성촌 집안 어른들은 우리가 살았던 종가집을, 늘 바위백이 큰집이라 했고, 어릴 적에 올라가기가 좋은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어, 그 소나무에 원두막을 짖 거 나, 소를 메여 놓아서, 늘 내 친구 승경이네 집에서는 못맞땅 해왔다,
그 이유는 소나무 바로 아래에 승경이 친구의 할아버지 산소가 있고, 가끔은 그 산소에 나온 승경이 할머니는 여기에 우리남편 산소가 있는 디, 이것들이 이러면 못써 하시면서, 메어놓은 소 고 삐 를 슬며시 풀어 놓은 셨 는 데 ,
이때 송아지가 딸린, 어미 소 와 송아지가 한없이, 이웃 마을로 달려가거나 들길을 따라 아산 리 신작로 가는데로 뛰어 다닌곤 한다, 이곳은 평소에 논에 물을 잡아가두고, 이른 봄에 천수답 못자리를 하려고 수문을 내리는데, 이곳을 이마을 사람들은 관이라고 부른다,
이관으로 고삐풀린 소가 달려가면. 영영 소를 잃어버릴 것 같은데, 나와 종선이 동생이 열심히 소를 잡으러 달려가면, 이웃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풀 린 소고삐를 달려가서 잡아주어 시위는 일단 끝이 난다 .그래도 이 암소 녀석이 여러 집 농작물을 못 먹게 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야단들 이지만,
서로 이웃 간에 노인이 하신 이야기를 듣고는, 그냥 웃어넘기기도 하는 시골인심이다, 우리 집은, 산이없어 산에 마 탕 히 소고삐를 맬 때가 없으면, 마당에다 말뚝 하나를 박아놓고, 고삐를 매곤 한다, 어느 때는 다시 잠잠 하다가,
여름철이 되면 집안에서 소똥 냄새가 나기 때문에 다시 시원한 그늘을 찾아 그곳에 소를 메는데, 어쩌다 산소 뒤에서 배설 를 한 소란 놈의 고삐를 잡아서,다시 엉덩이를 힘차게 승경이 할머니께서 줄로 내리쳐,
놀란 소가 날아나는데, 이때가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소고삐 잡이 놀이가 더 좋은 철없이 뛰놀던 그시절이, 지금도 다시 해보고 싶은 추억으로 그 생각이 나고, 가슴이 오늘따라서 더 조여오고 미어진다, 누가 우리를 백의민족이라 했던 가. 흰옷을 좋아하고 저고리와 조끼 하얀색 두루마기를 입고 양반들만 모이는 곳에서 시조나 창을 즐기시던 인심 좋은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해마다 겨울철이면 집 담장 밑으로 모여 드는, 거지들에게 밥을 해먹였다는 곳이 바로 우리큰집 터 이다 .그래서 어느 노승이 지나가다 큰 사람이 나올 명당자리라고 했다면서,우리 종가집 장손은 이 집터를 꼭 지켜야한다고 말씀하셨고 ,그 약속을 지금도 우리큰집 형님께서 지켜 가신다,
집 앞에는 아산 리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수로가 있고 .뒷산에는 봄이 오면 과수원에서 복사꽃이피고 살구꽃이 만발하여 꿈에 자주 보는 내 고향 집이었다,어느 때는 겨울철이 되면 ,집 앞에 있는 두 모 논에 오리가, 논두렁에는, 참게가 살았고 ,
초가집 처마에는, 빨갛게 호박꽂이용 호박말랭이가 늘어지고, 처마 시렁에는 시래기가 ,무 우 말랭이를 널어놓은 멍석위에는, 하얀색이 누렇게 변하는 과정을 거처 겨울내내먹을 말랭이가 만들어지고 있다 , 응기가 파놓은 논두렁이있는 구불구불한 쥐구멍에는,
언제 물어왔는지 누렇게 익을 벼 목 아 지<목>를 잘라서, 놓은 먹잇감이 있었다, 오늘은 새벽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러 가지 인터넷검색과 자료를 정리하고 잠간 잠이 들었는데 . 꿈결에 옛날 내가 살았던 큰집 생각이 나서, 가슴이 꽉 미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추억은 있지만, 나에게도 작지만 아름다운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내고향이 당살매 뒷동산이다. 그 시절이 생각이 나고, 어릴 적 내가 사용하던 여러 가지 소지품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보관하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추억 속에서만 그림자처럼 가슴속에 남아있다, 꿈결에 내가 잠을 자던 아래채의 문을 열고 보니, 반평생이 지난 너무도 그리운 그 시절이 친구들이 생각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두 리 번 거리다가 이글을 쓴다 .
그때 작은 무궁화나무 울타리 밑에 심었던 봉선화 꽃이랑 목화밭에서 철없이 따 먹었던 , 맛있는 목화송이랑 .작약 꽃 봉우리에 입맞춤하던 부드러운 기억이 내 머리를 맴돌곤 한 다, 가지 밭 사이에서 동생들과 숨 박 꼭 질 하다가 가지를 따서 입에 물고 장난을 치던 그 시절이었고
봄이면 무궁화 잎을 따서, 풋 나물로 만들어 보리밥을 해주셨던, 할머니 생각이 더 나는 아침이다 .새벽에 아침 해 가 뜨기 전에 , 소여물을 작두질 하던 내 모습과, 친구와 고구마 통가리 밑에서 함께 새우잠을 자던 그 모습이 생각나고,
가을걷이가 끝난 후에 나래를 역어서, 생 집 울타리를 하고, 노런 지붕 이 된 ,초가지붕에 용마루를 틀어 올려서 마감 하던 날 에는, 호박떡과 고구마 밥을 해먹거나, 무를 썰어 넣고 ,양념간장에 햇 참깨로, 금방 짠, 참기름으로 밥을 비벼서 맛있게 먹었던 그 추억이,
그리고 토방 밑에다 만든 마루에 ,집둥지를 만들어주고, 암탉이 낳아 놓은 누런고 따뜻한 달걀을 꺼내어 풀빵 집에서 바꿔서 먹었던 ,그 맛있는 풀빵생각이 더 소록소록 난 다, 눈길의 흰 고무신 발자국을 남기신 그자국을 따라서가면 ,우리옥실 작은 할아버지네 집을 지나, 방앗간 사랑방에서 겨울 내내 어른 들 의 화투놀이를 하면서,
으래 큰아버지 진지 잡수세 요, 철모르던 우리가 큰소리로 밖에서 소리를 내면, 간밤에 몽땅 돈내기해서, 본전을 잃은 어른께서는, 너희들 때문에 화투 끝발이 안선다고, 애원하는양 ,아직 못 간다고 해라 하시면서, 되 창문 넘어 로 말씀 하실 적 에. 함께간 동생하고 합창으로, 아버지 진지 잡수세 요!~다시 하면, 판이 식는다고 야단치시던,
그때 그 시절 어른들 얼굴이 보고싶다 , 거의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지금, 우리도 겨울밤이 되니 친구들과 함께 나도 그 시절로 가고픈, 바로 내가 생각하는 오늘이다..언제나 꿈에 본, 그 시절로 다시가 보려나....[출처] 카페 대문 (내고향 군산 전의이씨 카페) |작성자 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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