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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용일군산야구대부화잇팅! / 역전의명수군산시민화잇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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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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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일 군산야구의 대부로 불린다, 1931년생으로 서울에서 출생 경동 중<현 경동고등학교>야구선수단 창단 멤버로 서울상대를 거치면서 내야수로 뛰었다 . 1950년 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소위로 임관하고, 1953년 이 효 대령이 이끄는 육군야구부 결성에 동참하고, 1956년 소령으로 제대하면서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군산경성 고무신 공장을 운영해 사업가로써 수완을 발휘해 우리 군산에 만월 표 고무신 공장을 운영하면서,

1959년부터 야구 불모지에 군산야구에 첫발을 올리게 한 분 이시다. 이때 초등학교 4개교를 만들어 소년야구부터 시작 여기에서 육성된 선수로 중학교 2개교를 만들고 이중학교 에서 육성된 선수로 1969년 군산상고 야구부를 창설하여 이 고교야구 창설로 군산야구를 전국의 강호로 발돋움 시켰다, 당시감독은 최 동현 씨로 1970년 조선일보 주최 청룡기 전국고교 야구대회에 처녀출전 준준 결승전까지 진출 유망 팀으로 인정받던 중,

1971년 5월 한국일보 대통령배 전국고교 야구대회에 출전 준결승 .당시 나 창기 선수 <현 호원 대 감독>가, 본 대회 미기상을 수상 하여 이때부터 군산상고는 국내 고교야구 정상급으로 인정을 받던 중, 1971년 10월 전국체전우승은 고교야구단 창설 후 3년 만에 이룬 성과이고, 72년 7월에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황금사자기 경기에서 9회말 투아웃에 김 준환 선수의 끝내기 안타로 5:4로 경기를 역전시켜,

역전의 명수의 별명을 얻게 되어 야구출범이후 30년 만에 지방으로 처음 우승기를 가져오게 된 우승으로, 역전의 명수로 군산상고가 이르기까지 뒷받침 하시고, 군산은 이때부터 호남야구의 도시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때 뛴 선수는, 부장 송 기 섭, 감독 최 관수, 주장 김 준환, 선수 김 봉연, 송 상복, 양 종수, 김 일 권, 김 종 근, 조 양 언. 정 효 영. 양 기 택 이며 최우수상과 수훈 상에는 양 종수 선수가, 감독상에는 최 관수 감독이 수상 하였다.

이후에도 당해 10월 대구에서 열린 국회의장 배 야구대회 우승과 1974년 6월에는 조선일보사 주최 청룡기에서 준우승을 해, 지방야구를 전국야구의 중심에 올려놓은 등, 이렇게 훌륭한 고교야구 평준화 붐을 일으키신 분이다 ,그 후 79년 대한야구협회 전무이사로 일해 오셨고, 81년에는 서울상대 동기생인 이 호헌과 우리나라의 프로야구를 창립하고, 1982년 4월 개막 시키고 KBO 사무총장으로<82~90년>,

90년말 에는 한일슈퍼야구 조인식을 끝으로 사무총장을 사임하고, 92년에는 쌍 방 울 야구구단주 대행을 맡기도 해, 우리나라 야구 사 에 큰 업적을 이루셨다. 野史에 의하면 당시 전 두환 대통령 군부가 쿠 테 타를 일으킨 후, 국민들이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프로야구를 만들었다는 설의 그 후일담도 아주 유명하다.

군산 야구장은 1989년도 5월에 설치한 야구장으로 당시에 사정 동에 위치한 사정 동 방죽을 야구장으로 조성해 2~3년간 공사를 하던 중 필자가 목격한 야구장 지붕 한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1990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쌍방울레이더스 가 모 기업의 부도 이전까지 야구단 선수가 주경기장으로 사용했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 KIA 타이거즈가 2경기장으로 사용 수용인원은 12000명으로 <입석1000명 포함>좌우펜스 길이는 98m이고. 센터는 122m 로 펜스 높이는 약 2.3m 이다,

이렇게 천연잔디로 조성된 야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지난 2005 년도 이다 , 쌍방울 구단에서 사용하던 야구 구장의 관리가 장기간 전혀 안 되는 바람에, 군산 야구장 최악의 배수시설로 생긴 불명예의 문제는 기아 야구단에서 제 2홈구장 경기로 2004년 3년 만에 군산 개최키로 하고부터 이다. 2005년 7월13일 연합뉴스 장 헌 구 기 자 는 이렇게 현장에서 기사로 송고 했다. 기아타이거즈 제2홈구장으로 사용 중인, 군산구장이 경기운영 차질이 생긴 최악의 변수로 시설로 오명에 휩싸였다는 제하의 기사를 송고하였다

2005년 7월 13일 당일경기를 시작 두시간전에 군산지방에 비가 와서 프로야구 경기시작 여부를 둘러싼 비관적견해가 지배적이라면서, 구장의 왼쪽 외야는 흙을 파낸 웅덩이가 곳곳에서 눈에 띠었고 ,한참 웃자란 잔디는 이틀전날 내린 비로 그냥 걷기에도 미끄러워서 힘 이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질 뻑 거리고 물기가 전혀 빠지지 않아 13일 경기를 치루기위해서 오전 9시부터 직원들은 외야에서 스펀지로 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물이 빠지기는커녕 그라운드 위로 더 올라오는 현상이었단다, 야구장 배수를 위해서는 자갈을 깔고 황토를 덮는 기본설계가 무시된 공사로 2004년도에도 야구장사정이 엉망이어서 경기를 못했다한다, 시 에서 는 스포츠 마켓 팅 사업전략을 구상해 이런 경기장을 배수시설 2억 4천 여 만원과, 화장실 리모델링 1억9천1백 여 만원을 들여, 기본 보수공사 및 보강공사등 대대적으로 6억의 총공사비를 들여 시행 2007년 12월 까지 진행하고,

2008년 의회의 동의를 얻어 시설 예산을 더 과감하게 투자해 전광판 공사와 라이트 교체공사 우천시 경기를 치르기 불가능했던 운동장을 2008년에 잘 마무리 하고, 2009년 9월14일 금년도 프로야구 최종전에서 기아가 우승하는 장면을 이 경기장에서 전 시민들의 열 열한 지지와 열광 속에서 야구의 진수를 만끽하면서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를 보여드렸다, 특히 이날 오후 5시부터 밀려온 관중들 손에는 많은 통닭과 켄 맥주가 들려져 있었고,

경기가 끝난 후 삼삼오오 몰려가면서 외국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뒤섞여 두 손을 불끈 쥐고 기아선수들을 환호하는 모습과, 지난달 8월에 우리 군산 야구장에서 개최된 야구경기의 9회말투 아웃을 만루 홈런으로 뒤집는 후련한 우리 기아야구단 선수들의 멋진 야구경기를 시민에게 보여드렸다는데 대하여. 우리 여러 시민들과 동료들은 지금도 그 흥분이 그대로 유지 되고 있고, 이후에 더 좋은 종목의 경기가 군산에 유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볼 요량이다 .

광주구장에서 주말경기로 축포를 쏘려고 했던 기아구단의 눈치를 보면서 쏘아올린 멋진 프로 야구 2009년도 우승 축포는 그간 우리나라의 야구발전과 군산을 사랑하면서 지금도 군산 야구발전에 공헌을 해주신 이 용일 사장님과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야구선수단 출신 김 상현 선수와 ,이후 우리고장을 빛내기 위해 최선을 다 해줄 어린 꿈나무 스포츠 선수들에게 ,모든 출향인사들에게 돌려드리고 싶은, 이 아침의 내 추석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역전의 명수 군산시민 화이 팅!, 기아 야구단 금년도 최종 경기까지 프로야구 우승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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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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