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 모두 평등하고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배웠습니다. 배운 게 없어 무식하다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이 이렇게 무서운 나라인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60평생 길거리장사를 하셨습니다. 돈이 없는 게 죄라는 걸 오늘에야 뼈저리게 느낍니다. 돈이 있으면 가게를 할 테지만 배운 것이 없고 돈도 없으니 계절마다 물건을 바꿔가며 노점을 하십니다. 가족들 끼니 거르지 않을 만큼만이라도 벌고자 아등바등하십니다.
제가 오늘 어머니를 따라 어느 지방축제에 갔습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어떻게든 병원비라도, 물건 값이라도 벌려고 장사에 따라나섰습니다. 저희 외가댁 식구들과 함께 갔는데 외가 역시 외삼촌이 장애인인 영세민 가족으로 노점을 하십니다.
잘 걷지도 못하시는 연로하신 외삼촌... 서울에서 지방까지 물건을 어렵사리 들고 가 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자리를 펴는 순간, 몇 개의 물건이 팔리더군요. 기분 좋았습니다. 하지만 물건 팔아서 얼마나 남겠습니까? 몇 백원에서 천 얼마 정도 남는 게 고작입니다. 그래도 차비라도 빠질 수 있겠구나...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편 지 10분 쯤 지났을까... 난데없이 어느 남자가 제 바구니를 들고 뛰길래 "도둑이야~"하고 외치며 뒤따라 뛰어가서 왜 훔쳐 가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물건을 집어 드니 갑자기 시커먼 경호원 옷을 입은 남자 여러 명이 제게서 물건을 낚아채며 어디서 난동이냐고 소리치는 겁니다. 그제야 '잡상인 단속'이라는 현수막이 보이더군요.
제 바구니는 한순간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장사도 못했는데', '물건 값이 얼만데...' 이런 생각에 장사 안 할 테니 물건을 돌려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 통했습니다. 바구니를 안 빼앗기려고 움켜쥔 채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한 외삼촌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시는 장애인인데...
'잡상인 주제에 어디서 행패냐'는 식이더군요. 행패 부린 거 없습니다. '여기서 장사하면 물건을 압수하니까 가세요'하고 좋게 말하면 저희 식구들이 떼라도 쓴 답니까?